바로가기 메뉴

광주시

주메뉴

메뉴 열기

광주소개

푸르른 쪽빛이 배어있는 광주

삼한시대

삼한시대 사진

상고시대에 한반도남부에 자리잡고 있던 부족사회를 일컬어 삼한시대라 하는데 삼한은 마한, 진한, 변한을 말한다.

삼한에 관한 주요한 자료로는 위지 후한서 등이며 여기에 견문기, 풍도기적인 기사와 일종의 교섭사적이니 단편이 혼합되어 있을 뿐이다.

이들 자료에 의하면 본래 이 지역에는 국가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소국이었던 목지국이 군장(보통 진왕이라 하였음) 세력하에 있던 진국이라는 부족연맹체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진국의 동북계 지역에는 일찍부터 북쪽나라에서 남하 이주해온 사람으로서 집단사회가 형성되고 있었다.

삼한시대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남으로 망명한 소위 기자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준왕이 정주한 곳도 이 고장이다.
유이민의 사회는 준왕 이래로 스스로 한이라 부르며 목지국의 우두머리인 진왕의 보호와 지배 하에 있었으므로 낙랑의 한인들은 이를 진한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한의 칭호는 점점 확대되어 진왕을 맹주로 받드는 모든 소국에 대해서도 한의 칭호가 붙게 되었다.

후한말 대방군

후한말 대방군이 새로 설치될 무렵에는 진한과 아울러 마한, 변한이라는 명칭이 나타나게 되었다.
마한의 마는 본래부터의 족명인 개마에서 온 것이라 하며 변한의 변은 그들이 사용한 관모에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진한과 마한의 지리적 위치에 대하여 위치 및 후한서 등에는 모두 마한은 서쪽에 있고 진한은 동쪽에 있다고 되어있다.
이병도박사는 마한은 서남에 위치하였고 진한은 동북에 위치하였다고 하며 진한을 한강 유역까지 포함시키는 설을 내고 있다. 즉 오늘날의 광주지방이다. 이 한왕이 거점으로 삼았던 지역에 대하여 이병도박사는 광주의 고호가 회안임에 착안하여 그의 저서에서 논술 한 바 있다.

미사리유적

미사리유적은 하남시 미사동에서 발굴되었으며 과거에는 광주군 동부면 미사리에 속해있었다. 현재 계속 발굴 조사중이다.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및 동국여지승람 등의 광주나 기타 광주읍지의 연혁조를 보면 모두 광주의 별호를 회안이라 하고 광주 고로들의 전설에는 지금의 경안이 옛날 회안국왕의 소도지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뚜렷한 고증자료가 없는 것이 아쉽다. 다만 경안천 큰 다리 밑에 놓인 다리에 회안교라 새겨져 있으나 지금은 경안교 아래쪽 약 1km 지점에 교가 몇 개가 있을 뿐이며 광주시 목현동에서 내려오는 개울에 놓인 파발교의 이름을 새긴 것을 보았을 정도이지 연대 미상이다.

페이지 담당자
  • 문화정책과 | 윤지영 | 031-760-2692
최종 수정일
2020-10-28
페이지 만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