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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소개

푸르른 쪽빛이 배어있는 광주

조선왕조시대

조선왕조시대 사진

근세에 세워진 통일왕조를 조선이라고 한다. 위화도 회군으로 단번에 중앙정계의 실권자가 된 태조 이성계는 정치의 지도권을 장악하여 차츰 고려의 구세력을 몰아내고 드디어 신하들의 추대를 받아 서기 1392년 7월 개경의 수창궁에서 왕위에 올랐다.

처음에는 급격한 인심의 동요를 막기 위해 국호도 그대로 고려라 하였으나 뒤에 곧 조선이라 고쳤으며 인심을 새롭게 하기 위해 서울을 한양으로 옮기었다.

태조는 고려 때에 큰 폐단이 되었던 불교대신에 유교를 존중

태조는 고려 때에 큰 폐단이 되었던 불교대신에 유교를 존중하여 이를 정치 교육의 근본이념으로 삼으니 불교는 점점 쇠퇴하여 천대를 받고 유교는 극진한 대우를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명나라에 대해서는 사대정책을 써서 국호를 고칠 때에도 명나라의 승인을 받았던 일이 있다. 서기 1897년에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로 정하고 왕을 황제라 일컬어 표면으로는 독립국가로서 새 출발을 하는 듯 하였으나 외세에 의존하려는 태도는 여전하였다.
한편 노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일본은 한국에서의 모든 이권을 차례로 독점하였으며 서기 1910년에는 이른바 한일합방조약을 체결시킴으로써 나라의 주권을 완전히 빼앗기게 되었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태조의 한양정도에 따라 서기 1395년(태조4년)에 양광도의 수원부 이하 칠개군현과 더불어 광주부는 경기도에 내속되어 좌도에 편입 되었다.
당시 유수가 배치되던 개성 및 광주, 강화, 수원은 경관직으로서 중앙의 직할을 받던 곳으로 지방관제에서는 제외되었다.

세종 때에 진을 두어 여주 목,이천부,양근군,지평,음죽,양지,죽산 및 과천의 제현이 여기 광주 경관직으로서 중앙 관할에 속하였다.

서기 1455년(세조원년)에는 좌우전후 보례에 따라서 광주는 좌보(좌보)가 되고 우보 원주,전보 수원 후보 양주와 아울러 경사 즉 서울을 지키는 근기사진 의 하나로 광주를 중요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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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정책과 | 윤지영 | 031-760-2692
최종 수정일
202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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