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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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해지는 고지도의 대부분은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책이나 첩의 각 면을 1장으로 간주하면 전국적으로 최소 2만 장 이상 남아 있다. 대부분 국가와 각 대학 도서관 ·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국립중앙도서관 등에서 인터넷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조선 전기에 제작된 지도들은 모두 소축척 지도로, 광주는 작은 원 정도로 표현되어 있다. 광주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대축척 고지도는 대부분 18세기 이후에 제작되었는데, 대표적으로는 「동여비고」, 「해동지도」, 「동국지도」, 「여지도」, 「청구도」, 「대동여지도」, 「여지도서」, 「광주부지도」(1872년) 등을 들 수 있다.
「동여비고」는 역사지도를 비롯하여 조선의 전도, 도성도, 도별도, 군현 등을 대축척으로 연결한 지도로 총 60여 종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1682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지도에서 광주는 북한강 이남 경기우도를 그린 지도에 걸쳐 있다. 광주 관련 지명이 36곳이나 있고 한강뿐 아니라 소천(小川 : 소내, 경안천)과 탄천(炭川 : 숯내)까지 그려져 있을 정도로 자세한 편이다.
「해동지도」는 1730년대 후반에서 1740년대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조선에서 필요로 했던 대부분의 지도를 수록하였다. 광주부와 관련된 약 516개의 지명이 수록되어 있고, 대로 · 중로 · 소로로 구분된 수많은 도로가 그물망처럼 그려져 있다. 광주부의 모습은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기 위해 실제 모습과 다르게 그려졌으며, 정보가 가장 많은 남한산성 부분을 다른 지역보다 크게 그렸다. 또 읍치와 나머지 지역 사이의 축척을 동일하게 적용하지 않았고, 나머지 지역 사이에도 일정한 편차가 존재한다. 게다가 동서남북 방향을 표시하기는 했지만, 광주부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달라 방향을 찾기도 쉽지 않다.
「동국지도」는 조선 영조대에 정상기가 제작한 것으로, 이전 지도들과 달리 거리와 방향이 정확하다. 이후 정철조의 「여지도」 등에서 더 정확하고 자세해진 수정본이 제작되었으며, 이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서 최고 정점을 이루었다.
한편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이후 조선 정부는 전국적인 상황 파악을 위해 각 군현에 지리지와 지도를 제작하여 올릴 것을 명하였다. 그 결과 1872년에 제작된「광주부지도」는 세로와 가로가 102×72㎝로 상당히 크고 거리와 방향의 정확성을 추구하였다. 물론 읍치인 남한산성을 다른 지역보다 훨씬 크게 그리는 등 그림식 지도의 성격이 강하지만, 광주부에서 직접 제작한 것이기 때문에 상세하고 정확한 편이다.
읍치가 있던 남한산성은 단지 광주만의 장소가 아니라 대규모 외침 때 장기전을 위한 국가적인 요충지이기 때문에 아주 자세하게 그렸다. 성곽의 구체적인 형태와 성 밖의 요해처, 그리고 성내의 각종 건물과 성 밖에 연결되는 성문 및 도로가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남한산성 밖의 광주지역은 면 단위의 행정 지명, 중요한 산천 지명, 지역 간의 왕래에 필요한 도로와 그와 관련된 역 · 주막 · 고개 · 나루 등의 지명이 아주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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