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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때 숨진 진(陣)노평

병자호란때 숨진 진(陣)노평

진노평은 속칭「진터벌」이니 남한산성에서 내려다보이는 광나루쪽 평야를 말하는데 이곳에는 병자호란 때 정절을 지키다가 참혹한 죽음을 당한 한 부인의 다음과 같은 슬프고도 갸륵한 일화가 서려있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인조14년 봄이었다. 영의정 김유의 집에서는 그 부인의 생일잔치가 벌어져서 많은 조신(朝臣)의 부인들이 모였다. 이때부터 벌써 미구에 전란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한 소문이 돌고 있어서 좌중의 화제는 자연 여기에 미쳤다.

「실제로 오랑캐들이 쳐들어온다면 그 일을 어찌하겠습니까. 그 짐승들에게 만약 붙잡히기라도 한다면 」 한 부인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좌중의 부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모두다 치마끈으로 목을 매어 죽든지 물에 빠져 죽든지 해야지 오랑캐에게 몸을 더럽힐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서 조용히 고개를 젓는 부인이 있었으니 평소에 별반 말이 없는 김승지 부인이었다. 「일이란 당해 보아야 알지 어찌 장담부터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럼 김승지 부인은 오랑캐에게 몸을 허락할 수도 있단 말이오?」 좌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치욕보다는 죽음을 택한다고 장담한 이참판 부인이 김승지 부인의 말을 탓하고 나섰다.

「짐승에게 몸을 허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벌써 짐승이나 다름없어요!」결국 김승지 부인은 이 자리에서 이참판 부인에게 큰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해 겨울에 기어이 호란은 일어나고,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자 조정 백관들의 권속들도 우왕좌왕 남한산성을 향해 피난길을 재촉하였다. 대부분이 부녀자들과 노약자들로 이루어진 행렬이었는데 그 속에는 김승지 부인과 이참판 부인도 끼여 있었다.

그러나 일행은 광나루로 건너자마자 용골대가 거느린 청군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젊은 부인들만 다시 가려져서 호진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날 밤, 「일이란 당해보아야 안다」고 말한 김승지 부인은 야욕을 채우려고 덤벼드는 적장을 차고 있던 은장도로 찔러 죽이고 자기도 죽음을 당했다.

이와는 반대로 그토록 호언장담하며 김승지 부인을 모욕했던 이참판 부인은 용골대에게 끌려가자 자진하여 온갖 아양을 부렸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용골대의 첩이 되어 청나라로 가버렸다. 정절을 지킨 김승지 부인의 시체는 다음날 대노한 용골대에 의해 토막이 나서 호진 밖의 벌판에 버려졌다.

이곳이 바로 진벌터이니 김승지 부인의 갸륵한 죽음을 전하는 이 이야긴 오늘날까지도 듣는 이의 가슴에 감동과 함께 숙연한 교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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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관광과 | 김태순 | 031-760-4821
최종 수정일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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