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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쪽빛이 배어있는 광주

송암정의 통곡소리

송암정의 통곡소리

황진이(黃眞伊)는 마음이 담담했다. 그러니까 꼭 삼년 만에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그 옛날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하여 뭇 남자들의 애간장을 녹이던 황진이가 아니라 속세를 달관한 여승(女僧)이 되어 하산하는 것이다. 삼년동안 일구월심으로 불경을 외며 수도 하다가 이제 속세로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따라 금강산(金剛山)을 내려오는 것이다. 가슴이 메어지도록 아프던 그 많은 사랑도 한 가닥 구름처럼 흘려보낸 황진이는 장삼에 고깔 쓰고 손에 염주(念珠)를 들었다.

비록 머리를 깎고 고깔을 썼을망정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다. 황진이는 며칠을 걸려서 어느 산 속에 이르렀다. 그곳은 산세가 수려하고 큰 소나무가 울창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으며 경치가 이를 데 없이 절묘했다. 황진이는 경치에 취하며 더욱 바삐 걸어서 언덕길에 올라섰다.

언덕에 올라선 황진이는 문득 발길을 멈췄다. 언덕 위 소나무 아래서 여러 사람들이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 사오명과 여자 두어 명이 장구를 치고 춤을 추며 흥겹게 놀고 있는 중이었다. 모두가 이십 고개를 넘어선 사람들로서 의관을 갖춘 품이 양반집의 한량들로 보였다. 그때 한 사나이가 소리를 쳤다.

「여보게들! 가만히 좀 있어보게」 「왜 그러나?」 「아니 중이 아닌가?」 「글쎄 중은 중인데 여승 같구먼.」 그중의 한 사람이 앞에 있는 술잔을 훌쩍 마시며 상을 찡그렸다. 「에이! 재수 없게시리 중년이 앞을 지나다니」 「아이 서방님도 스님도 여자 남자 가려서 재수가 있나요」 「뭐? 술맛 떨어진다.」 「여보게! 좋은 수가 있네.」 「좋은 수라니!」 「글쎄 가만히 보고만 있게.」 이러는 동안에 고개를 다 올라온 황진이가 그들 앞을 지나려 할 때였다. 「여보 스님, 잠깐 내 말 좀 듣고 가시오.」 「나무관세음보살, 무슨 말씀이 온지?」 「바쁘지 않으시면 잠깐 쉬었다 가시구려.」 합장을 하고 서 있는 황진이를 바라보는 여러 사람들의 눈은 호기심에 가득 찼다.

「고마우신 말씀이나 소승은 사바를 떠난 몸이오라 이대로 물러갈까 하옵니다. 나무아미타불」하고 황진이는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이때 몸이 건장한 사나이가 황진이에게로 다가와서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일행이 앉아 있는 곳으로 왔다.

이에 좌중사람들은 와 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도 전생의 인연이니 스님도 우리하고 유쾌하게 놀아봅시다. 하하」 「불가에 몸을 담고 있는 소승을 어찌 이리도 희롱을 하십니까?」 「화를 내지 말고 그 백옥 같은 손으로 술 한 잔 따라 주시구려, 얘들아! 무엇을 멍하니 있는 거냐? 어서 장구를 쳐라!」 땅딸보 같은 사나이가 기생들에게 소리를 치면서 갑자기 황진이의 고깔을 벗겨서 절벽 아래로 던진 것이다. 좌중은 또 한 번 웃음판이 벌어졌다.

그러자 기생들은 장구를 치며 춤을 추기 시작 했다. 「저 계집들보다 스님의 얼굴이 백배 낫소. 머리를 기르고 나와 살면 어떻겠소. 하하 」 「무엄한 말씀이요. 관세음보살.」 「술맛 떨어지게 놀지 말고 자 한잔 따르시오.」 갖가지 수작들을 부리는 그들의 손에서 빠져나가기 영 틀렸다고 생각한 황진이는 할 수없이 술병을 들었다. 잔을 내민 땅딸보 사나이에게 술을 따라주니 그는 한숨에 술을 들이키고서「엉 그 술맛 좋다. 스님이 따르는 술이 이렇게 맛있는 줄은 진즉 몰랐는데 」하고 능청을 떨었다. 이윽고 황진이가 입을 떼었다.

「이제 소승은 물러갈까 하옵니다.」 「그게 무슨 말이요, 천하의 절색이 가버리면 흥이 깨어질 터인데 될 말이요?」 그러면서 황진의 손목을 잡아끌어 껴안으려 하자 기생하나가 두 사람을 떼어놓으면서 가운데로 파고 앉았다. 「서방님 그만 하세요, 부처님한테 벌 받아요」 「네년은 저리 좀 가 있어! 난 이 스님하고 만리장성을 쌓아야겠다.」 이때 황진이는 물러앉으며 이렇게 말을 했다.

「그대들의 우매함을 보니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요.」 「뭣이? 건방진 중년이!」 「그대들이 하는 짓은 인간의 오욕이 빚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오욕을 채우고 난 다음에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입니다. 그러나 현세에 맺은 업보(業報)라는 것은 내세(來世)에 가서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대들이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신 법을 더럽히려함은 곧 그대들의 내세를 더럽히는 것이니, 자기를 아끼는 마음으로 남을 아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도도히 흐르는 어조로 황진이는 설법(說法)을 계속했다.

좌중의 사람들은 말을 잊고서 멍하니 듣고 있었다. 그 중에도 기생 하나는 두 볼에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소승은 본시 송도에서 살던 황진이라는 기생이옵니다. 어느 때에 깨달음이 있어서 불가(佛家)에 귀의(歸依)하였사온데 소승도 사바(娑婆)에 있을 때에 지은 업(業)으로 고행(苦行)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황진이의 말이 끝나자 모든 사람들은 놀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때였다.

눈물을 흘리며 황진이의 말을 듣고 있던 기생이 「소녀가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이제 이 세상을 살기가 부끄러워졌사옵니다. 안녕히들 계십시오.」 하고 순식간에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남한산성 동문 근처에 있는 송암정(松岩亭)에는 달 밝고 고요한 밤이면 남녀들의 노래 소리와 여인의 통곡소리가 들려왔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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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관광과 | 김태순 | 031-760-4821
최종 수정일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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